뭔가 이것저것 잔뜩 본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게 되었다. 또 기승전디지몬이 된다...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 > 랭스 읽고, 요거 읽었는데 마지막? 원고가 진행 중인 것 같다. 다시 파리로 돌아가는... 랭스도 다시 후루룩 봤는데(모자이크 독서 최고^^)... 제목에 따라 당연하게도, 랭스라는-수도가 아닌 모든 지역을 뭉뚱그리기 보다는 공업 도시이고 공장 노동자를 중심으로 좌파적 정치안이 우세했다가 우파로 이동한 산업시대 성장 중심지라서 더 이해가 됐던-지역과 어쩌면 아버지 보다는 아버지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던 디디에 에리봉 자신(과 성소수자)이 초점이라면, 삶노년죽음은 그 랭스에서 시절을 보낸 서민 여성이 중점. 그리고 제3편은 다시 파리로 돌아온 디디에 에리봉 자신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 -글고 푸코에 대한 얘기가 더 있지 않으려나!? 전반적인 요양 및 노인 대상 산업이라든지 노년에 이르는 죽음에의 과정에 대해 노인들이-특히 배움이 없는, 혹은 그들의 나이듦은 남아 있을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노인들이 어떻게 스스로 말할 수 있는지 같은 내용은 물론 당연하게도 좋지만... 역시 제일 좋은 것은 랭스에서도 그러했지만 이런 논지를 끌어내게끔 하는 실제 디테일들이다. 어머니의 삶. 더군다나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 복기하는 어머니와 함께 했으나 어긋났던 부분들. 이 어머니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자신에 대한 묘사. 내가 왜 부끄러웠는지를 따라가는 것... 이 모자의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고 잘 통하지 않는 것까지도 정말... 어째서일까 게이들은 다들 엄마이슈 있는 것 같다는 말-아니면 창작물에서 그런 식의 묘사가 많이 된다는 말이었던가? 예전에 보고 그러게 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래서인가 엄마 얘기 왤케 잘씀, 하는 생각도 하고 한편 너무 이해하려고 애썼으니까 또 엄청 멀어지고 싶었으니까 그랬겠지 싶기도 하고.
아무래도 자주 언급 되기도 하지만...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와 부끄러움도 같은 흐름으로 읽어야겠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하곤 있었지만 두께가 그리 두껍지 않은 반면에 무엇이 있을지 약간 두렵단 생각이 들어서( 왜인지는... 그녀의 다른 작품들에서 약간 데였기 때문이겠지만 ) ... 뭔가 책 읽고 상처받았다 생각한 적 없는데-긍까 뭔가.. 도끼로서의 책.. 도끼로서의 작품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이 상처다! 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데 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뭔가 그럴 것만 같은 (뭐야). 언젠간 조만간엔 읽으리라... 여튼
다시 둘러본 랭스에서,
(...) 게이가 퀴어에 특유한 시간성과 지형학이 존재한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규범'에 편입되지 않은 이들에게는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가가 문제가 된다. 마찬가지로 이 시공간에 의해 부분적으로 그 존재를 규정당하는 사람들일지라도 그 안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도 의심의 여지 없는 사실이다. 게이나 퀴어의 삶을 특징짓는 것은 차라리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 하나의 시간성에서 또 다른 시간성으로 (비정상의 세계에서 정상의 세계로, 또 그 반대로) 계속해서 옮겨 갈 수 있는 능력-혹은 그래야 할 필요성-일 터이다.
이 부분 뭔가 트랜스젠더들이 어떻게 살기를 바라는가에 대한 키라라의 답이 생각났다. 성정체성에만 머물지 말고 여러가지 정체성을 만들어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살아남은 다음의 문제를 얘기하는...
삶노년죽음 읽으면서 배수아-작별들 순간들, 클로디 윈징게르-내 식탁 위의 개를 같이 읽었는데 세 권의 책이 은근히 겹쳐 들어가는 느낌이라 좋았다. 중심점은 내 식탁 위의 개였는데, 노인 여성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고, 동물권에 대한 얘기도 함께 하는, 올가 토카르춬 생각도 좀 드는 구성, 소재, 등등. 어떤 느낌이냐면, 젊은 히피들 얘기 아니고 노인 히피의 이야기. 상상되는 꼴은 시골에 덜렁 남은 노인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고. 삶노년죽음에 이어서 읽으니 노인 당사자(사실 에리봉 씨도 노인이 아닌 건 아닌데-그치만 아닌 것 같긴 하다... 그래도 내식탁위의개 의 주인공보다는 20-30세 정도 젊기 때문에... 그리고 도시인이기 때문에 훨씬 젊게 느껴짐)의 목소리가 이어서 들려오는 느낌이라 적절하게 느껴졌다. 한편으로 짐끄짐을 소설로 표현하는 느낌이기도 하고. 노인이란 동물과 장애의 성격을 모두 가진 인간이고-아마 어린이도 그렇지만(0세에 가까울수록) 노인에겐 미래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점, 인간적인? 성장을 담보하고 돌보지 않는다는 점이 보다 동물과 장애에 묶이는 느낌. 좀 깨는 면이 있지만 초중반 어느 즈음부터 갑자기 화자와 개 예스의 관계가 마치 덴지와 포치타처럼 느껴져서, 도망치기에 성공해서 오두막에서 새로운 인생을 사는 덴지와 레제와 개 포치타의 어떤 느낌으로 읽어서 이래도 되나 근데 되돌릴 수가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읽었는데 끝까지 가서도 그렇잖아! 했다. 삶을 유지해야하는 이유, 그런 욕망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고, 그 매개가 폭력을 당한 개. 그런데 그 역할로서의 개로만 갈무리되는 것 아닌가 하고, 그런 게 인간의 폭력적임이긴 하지, 그치만- 하는 아쉬움은 있는 마무리. 근데 또 너무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괜찮게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어차피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으로 강조하기도 해서...

자전적 소설인만큼 책과 글쓰기에 대한 얘기도 많이 나오는데 책 무더기 속에 있는 것을 무덤처럼 표현하고 있어서 그런 게 재미있다. 본인 역시 그 책을 쓰고자 한다는 점에서 전반적으로 죽음을 향하는, 준비하는 어떤 능동적임도 흥미로움. 눈에 띄게 완전 노인(?)이 주인공인데도, 죽음을 돌봐줄, 늙은 몸을 돌봐줄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노인 둘과 개 하나만의 이야기인데, 또 엄청 외롭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노화되고 죽어가면서 점점 더 어딘가로 탈출하고 그로 인해 점점 더 어린 것으로 소년을 유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번 현대문학상 수상작이 임솔아 작가님이길래 구매했고 당선작이 또(!) 약 팔십 세 가량 노인의 이야기여서, 신묘한 연을 다시 느끼며-사실 내게 독서의 즐거움은 이런 거인듯. 찾아 읽어서의 경우도 있지만 우연히 그러나 뚜렷하게 엮이는 뭔가를 발견할 때..., 오 월을 맞아 역시 할머니에게서 뭔가 얘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는 현재보다 아주 약간 미래. 지금의 상태가 좀 더 지속된 미래로 기력이 소진된 사랑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늙은 애인을 떠나 보내는 도중에 많은 사람들을 잃지 않기 위해 또 계속 떠나보내면서도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 보냈던 세월을 단편에 압축한 것. 예전 작품들이 마구 휘두르는 작은 커터칼 같았다면 이것은 좀 더 무뎌지고 사용감이 있고 그래서 더욱 조심해야하는 것 같은 느낌. 구술사로 참여하는 주인공, 인 점도 좋다. 웹진에 게재된 시도 좋았다. 곁에서. 연관성 깊은 이미지.
https://www.sfac.or.kr/literature/epi/A0000/epiView.do?epiSeq=1360
곁에서 - 임솔아 | 웹진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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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글도 생각났다. 공간을 매개로 여러 시간에 걸친 이야기들을 끌어내는 작업들. 서사에는 시간과 흐름이 있어야 하지만 그 시간들이 모두 뒤섞인 장소로서의 공간을 더 생각해보게 된다... 시간의 흐름... 보다 동시다발적으로 존재하게되는 시간? (또 디지몬 생각.... 디지몬과 세계....에 대한 생각....)
https://www.sfac.or.kr/literature/epi/D0000/epiView.do?epiSeq=1352
비밀과 침묵의 기록 - 김지승, 전리해 | 웹진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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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소설 신간 마신자:끌려간 거인. 소개에 오키나와인인지 타이완인인지- 라는 거 보고 안 읽을 수 없어서 시작, 빠르게 후루룩 읽었다. 알포인트 같은 게 생각나서 중간중간 꽤나 무서웠어... 타이완 사람들은 타이완에 사는 사람들의 민족 정체성이 아주 다양함에서 타이완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자각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보았는데, 책 표지 색감이라든지 경계에 대한 얘기라 트랜스/논바이너리의 문학처럼 읽히기도 했다. 국가의 경계, 언어의 경계, 몸(과 영혼)의 경계 등등을 은근하게 혹은 거칠게-거침없이 건드리고 왔다갔다 하는 글이었다. 전에 오키나와 여행으로 간 지역이 야에야마 제도의 섬으로 거의 오키나와 최남단이었는데, 여행가는 준비할 때도 일본 땅보다 타이완과 훨씬 가까워서 신기하다- 그런 얘기를 했던지라 스토리에 몰입이 잘 됐다. 글 자체는 워낙에 문제의식과 목적이 뚜렷하고-타이완과 타이완인의 정체성, 국가라는 개념의 경계 설정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 구조도 단순한 편이라 3세대와 몇 개의 국가(?) 정체성을 다루는 이야기치고는 깔끔한데 오히려 그러한 구분 자체가 소재여서 그런지도. 운동적 성격이 확실하고, 사회 의식에 대한 목소리를 듣는 게 좋았다. 작가의 말과 소설의 목소리가 거의 일치하는 재미가 있다. 독도를 문제화 시키는 것과 비슷한 내용도 나오고. 2차 세계대전 시기 아시아쪽 얘기가 재미있다. 풍요로운 자연에 대비되는 인생사. 또 새삼 좋았던 것은 한자문화권에서 나오는 한자의 형태를 이용한 말장난?이랄까. 사실 한국은 한자를 병기로 구분할 때 외에 문자로 직접 쓰는 일이 이제 거의 없으니까 그렇게 자주 보이는 경우는 없는 것 같지만 옛날 얘기를 활용하는 경우라면 또 적극 활용되고, 마침 이 이야기는 두 국가와 지역의 비슷한 신화소의 설화가 모티브이다보니까 괜히 거리감이 좁혀진다.
오싱을 보고 있는데, 어린 시절이 지나고 한창 전쟁 일으키고 살림살이 나아질 때여서... 약간 재미가 떨어졌다. 그거랑 같이 생각하면 정말 갑갑해진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 내에서 착취받는 일본인들도 안타까운데-도호쿠 대기근, 대지진 이런 배경이 있는 것 같다, 또 동시에 풍요로운 다이쇼를 만끽하는 도쿄를 생각하면... 일일 아침드라마 보는듯이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지만 일본의 정서에 전반에 대한 거시적 관찰로 이해되고 있다. 정이 가는 인물, 카페 아테나 직원들, 오싱의 엄마 후지. 시대적 한계 이상의 무언가도 있고 또 그냥 인간의 서사로서 재미가 있기는 한데, 드라마가 어필하는 와풍 여성상이 너무 숨막힌다. 말하자면 나데시코의 전형.... 완벽한 여성이 되기 위한 갈고 닦음, 세련됨에 대한 의지, 이게 요구된다거나 그런 태도가 사실 인간적으로 전혀 나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향하는 바는 이해가 되지만... 한편으로 이게 소라의 배경인 것 같다 싶다. 일본 배경에서는 너무 자연스러운...
친구에게 귀신들의 땅을 열심히 영업하고 잘 읽었고 구매하겠다는 후기까지 들어 기쁜 와중에 천쓰홍 신작을 보려고 했는데.... 이 책 저 책 찍먹하다가........
디지몬 오케스트라 한 번 더 갔는데 이런 저런 운영 상의 불만 기술적 문제 등이 빗발쳤지만... 그럼에도 좋아서 오타쿠 토킹하며 걸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하면 걸을 수 있는 곳이 많다는 게 좋아(더 걸을 수도 있었겠지만 일요일 오후 일곱시 반 공연이라는, 최종 막공은 월요일 오후 일곱시 반이라는 무지막지한 편성 ㅜㅜ) 사실 일요일 공연은 사고가 많았고 월요일 공연은 어느정도 수습이 된듯해서 일욜 공연 본 나는 절반정도 즐긴 거 같지만. 그래도 나.... 파워디지몬이 왜 이렇게 좋지-하는 생각만은 더욱 공고해졌다. 그냥, 음악 시작하면 눈물이 와르르 차오르는데, 비트 히트 시작하기 전 전영호님 인사 말씀도 너무 용기를 북돋아주는 말이어서, 와아앙- 하고 울고 싶었어. 하지만 이번엔 혼자 앉아서 좀 참았어. 그런데 역시 무엇보다 좋았던 건.... 콘서트 끝난 뒤의 나레이션이었다. 25년 전에, 파워디지몬 엔딩에서 어른이 된 리키의 나레이션을 현재진행형으로 바꾼 것처럼 느껴졌다... 더군다나 그 목소리이고... 그때나 지금이나 모험을 멈추지 말라는 내용이라는 것이 무척 좋고, 다음날 출근에 힘이 되었다.... 어쨌든 디지몬 시리즈에서 이렇게 가장 미래를 표현하는 엔딩은 파워디지몬이어서, 전체 시리즈의 끝은 꼭 그런 모습이겠지 같은 막연한 이미지가 있다. 작중 시기를 생각하면 현실시간도 그 엔딩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에릭 사댕 유령의 삶:디지털 세계에서 인간은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제목이랑 디자인 등등을 보고 지나칠 수 없어서 보자마자 샀는데 서점에 깔린 직후였던 것 같다. 콘서트 보고 나와서 바로 읽었다. 디지털 세계에서 존재하기<라는 어휘가 너무 디지몬 오타쿠에게 어필돼. 저자는 생각보다 훨씬 디지털 세계 자체에 회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느껴지고, AI에 대해서는 거의 사용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하게 말하는 드문 어조를 띤다. 디지몬 생각하려고 읽은 나는, 또 한편으로 이 기술에 다소 회의적인 입장에서, 세계 속에서의 위치를 계속 생각해보게 됐다. 디지몬 시리즈에 등장하는 현실과 디지털 세계의 관계가 엄청 흥미롭다. 갠적으로 디지몬 생각을 계속 하는 이유도 디지털 세계가 현재의 배경과 계속 함께 가기 때문이다. 캐릭터들은 디지털 세계에서만 모험하지 않는다. 양쪽 세계의 비중 차이는 있지만, 그것이 현실에 어떻게 들어오는지, 현실은 어떻게 디지털 세계와 관계되는지 여러 시리즈, 여러 작품마다 약간씩 다르게 세팅이 되어 있다. 현실의 기술이나 형태가 변함에 따라 디지털 세계와 디지몬의 양태가 달라지고, 그 디지털 세계의 묘사를 위해 현실 세계의 묘사가 함께 충분히 되어야 한다. 두 세계는 평행세계처럼 존재하지 완전히 일치하거나 하는 일은 없다. 그 경계가 무너지면 위험해지는 것이다, 양쪽 모두...
그런데 막상 이런 시대가 되니 디지몬 시리즈의 디지털 몬스터란 오히려 엄청나게 아날로그적 개체 같다는 인상이 있는데... 아무래도 디지털 세계로 인간이 이동해서 모험을 하는 이야기이다보니 직접적인 경험처럼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다. 지어낸 이야기이기 때문에 오히려 실재로 느껴지는 이상함. 실제로 모험하고, 감각하고, 현실로 돌아오도록, 어린이-청소년을 타겟하는 이야기로서의 기능? 사실 최신 시리즈 등은 또 어떻게 끝나는지 봐야 아는 거지만... 디지털 몬스터라는 것 자체가 디지털 + 몬스터라서, 모순? 역설?을 갖고 있고, 나의 경우 어쨌든 디지털 세계라는 건 자연 발생적인 거라기 보다 현실 세계를 반영하고 있는 층위로 느껴지기 때문에... 기반은 현실, 몬스터라는 생명에 더 가깝게 인지한다. 예전 시리즈를 보면 네트워크나 디지털 세계로 인한 세계의 연결이 훨씬 낭만적으로 느껴지는데, 아마 이런 물성, 살아있음에 대한 인식이 훨씬 단단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책에서 말하는 것이나 실제로 내가 느끼는 것은, 막상 도래한 디지털의 시대는 그렇게 긴밀한 연결이 되지 않을뿐더러 도리어 더 개인화되고 파편화된다. 특히 팬데믹으로 오히려 그렇게 분리되는 게 더 마땅한 관계라는 익식이 전박적으로 자리잡게 된 것도 분명하고. 사실 책에서 가장 주의하는 부분은 관계적인 부분 그자체보다는, 특정 기업을 주축으로 인간의 어떤 의지, 움직임, 능동성을 주저앉히는 자본주의에 기반한 경제원리인데, 이걸 어디부터 바꿀 수 있지? 그런 생각은 든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모험을 계속하라고 말하는 파워디지몬의 엔딩이 계속 계속 생각나는 것이다. 계속 부딪히고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무엇을 할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고-철학의 필요를 주창하는 것이기도 하고. 책의 마지막 단락은 파워디지몬 마지막 화에서 사랑해 마지않는 그냥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는 장면을 함께 볼 수 밖에 없지.




위 책에서, 인간의 능동적 생각이라든지 자유 의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 도구로서의 언어를 특히 강조한다. 아무래도, 언어모델로서의 AI도 극렬하게 거부하고 있는 논조이기 때문에. 역시 한국어 특히 한글은 너무 편리한 언어이고 소리와의 차이도 거의 없으니까 인식의 경도가 다른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프랑스 사람이라 그런지-일단 너무 철학의 나라고, 기표와 기의의 나라고, 언어로 생각하고 말하고 쓰는 것에 크게 의의를 둔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것을 인간의 가장 큰 의지-노력으로 두는 것도 한편 지당하다는 생각도 들고:언어화 할 수 있음이 주는 권력. 인간이라고 표현하기는 좀 어려울 수도 있지만 어쨌든, 언어가 가지는 권력을 주지하는 점. 그리고 이런 부분에서 또, 디지몬이 처음 나왔을 때, 포켓몬과 달리 어필하는 게 인간의 언어로 말을 한다는 것인데:심지어 사투리도 씀... 그것에 대해, 사람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몬스터로서의 성질을 많이 버리는 것이라고 어떤 분이 표현하신 게 생각이 났다. 디지털 몬스터라는 건 인간의 언어를 기반으로 해서 태어났으니 사실 몬스터의 성질이란 건 처음부터 거의 없었을 것이다... 바이러스라고 이름붙인 것과 비슷한 기조, 그 언어가 인간의 예상 밖으로 발달할 때 괴물이라고 인식하게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정도. 사실은 지구의 많은 것들을 부분부분 반영하고 지구의 것과는 다르게 뒤섞인 형태로서의 몬스터 느낌이니까.
그래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더하고 싶은 마음에 새 시리즈 비트브레이크를 당장 봤고 그것에 대한 흥분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약 5년을 미뤄둔 해커스메모리를 시작했고 그런 와중에 카쿠도 감독의 말하자면 비욘드 소설판이 업로드 되어서- 비트브레이크 얘기는 일단 미룬다. 중순에 도서관에서 책 잔뜩 빌렸는데 이러한 이유로 전혀 읽지 못하고 반납한다. ... ^_ㅠ ... .